나의 고향, 나의 술: 경월 소주와 용대리의 밤
동해안 작은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나는 강원도의 맑은 하늘과 청정한 공기를 당연하게 여겼다. 고향의 산과 바다는 내겐 늘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군 생활로 처음 도착한 유명한 산골짜기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의 그 원통 변방의 용대리의 산골짜기는 또 다른 강원도를 보여주었다. 그곳의 공기는 매서웠고, 하늘은 더 깊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소주 "경월"은 내게 강원도의 또 다른 얼굴을 가르쳐 주었다.
첫날의 신고주와 냉면대접
부임 첫날, 나는 전투지원중대의 소대장으로서 다른 동기 둘과 함께 긴장과 설렘을 안고 중대에 도착했다. 그날 저녁, 중대장은 민물고기 매운탕에 소주 한 잔씩을 권하며 환영해 주었다. 그러나 진짜 '환영식'은 그 이후에 있었다. 옆 대대의 선배 소대장들이 우리를 인근 식당으로 불렀고, 그 자리에서 우리는 경월 소주를 냉면대접 가득 따르고 돌리는 독특한 신고주 문화를 경험했다.
냉면대접을 두 손으로 받아든 순간, 뇌리를 스치는 건 두려움과 설렘이었다. 빈속에 쏟아부은 소주는 뜨겁게 목을 타고 넘어갔고, 머릿속은 금세 하얘졌다. 그날 밤, 나와 동기들은 소주의 기운으로 선배들의 군담을 들으며 동질감을 키웠다.
반합뚜껑과 소대원들
소대 회식 날이면 대용량 됫병에 담긴 경월 소주가 등장했다. 우리는 소대마다 돌아가며 반합뚜껑에 소주를 채워 돌렸다. 처음에는 이 독특한 풍경이 낯설었지만, 이내 그 속에서 동료애와 신뢰를 느꼈다.
반합뚜껑을 소대원 하나하나에게 받아들며, 나는 그들의 삶의 무게와 꿈을 함께 나눴다. "힘내라"는 말 대신, 소주 한 잔을 따라주는 행위가 그 시절의 무언의 위로였다. 알코올로 인한 쓰라림보다 따뜻했던 그 순간들은 지금도 내 가슴속에 생생하다.
용대리 대포집과 동료들
소대장들과의 유대감은 용대리 초입의 대포집에서 더욱 단단해졌다. 이곳에서 마신 경월 소주는 용대리 황태구이와 함께 우리의 밤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술잔을 부딪칠 때마다, 우리의 대화는 웃음과 고민, 희망과 절망으로 채워졌다.
“한 병 더 돌릴까?”라는 말로 시작된 새벽의 술잔은 우리 사이의 간극을 좁히며, 진심 어린 우정을 쌓아갔다. 용대리의 밤공기는 차가웠지만, 대포집 안의 분위기는 그보다 더 뜨거웠다.
황태 덕장의 초소에서
한겨울의 초소 근무는 한 잔의 술이 더욱 간절한 시간이기도 했다. 황태 덕장 부근에서 맡던 경계 근무 중 얼음장 같은 공기에 몸을 녹여주던 건 경월 소주였다. 공식적으로 허용되지 않았지만, 병사들끼리 돌리던 소주 한 잔은 추위를 잊게 하고, 동료애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추운 새벽, 소주 한 모금의 온기 속에 녹아든 강원도의 겨울은 여전히 내 기억 속 가장 따뜻한 순간으로 남아 있다.
경월에서 처음처럼, 그리고 내곡동의 풍경
경월 소주는 이제 브랜드 이름으로는 사라졌지만, 내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강렬하다. 강릉의 지방 유지 최 씨 집안에서 시작된 경월 소주는 두산과 롯데를 거치며 "처음처럼"으로 새롭게 태어났지만, 그 맛 속엔 여전히 경월의 흔적이 남아 있다.
요즘 내곡동 집 근처를 지날 때마다 롯데 소주 공장의 간판을 보며 경월 소주와 강원도의 추억을 떠올린다. 그 시절의 냉면대접, 반합뚜껑, 대포집에서의 웃음소리와 초소에서의 따뜻함이 스쳐 지나간다.
가끔 소주잔을 기우릴때 생각한다. 술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시간과 시간을 잇는 다리라고. 술이술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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